"절망과 희망 사이...자폐증 완치 …
[헬스조선 = 한희준 기자]'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발달장애 명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
[유튜브-헬스조선명의] 김붕년 교수님 인터뷰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zPl5PCqAc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 발달장애아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발달장애인들은 태어나 첫 생일을 맞이할 무렵 장애가 발견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또래와 다름에 움츠러들며, 사회로 진출할 쯤 좌절을 맛본다. 지금까지 국내 발달장애인들은 대부분 이런 삶을 살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편견을 없애고, 발달장애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와 함께 발달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발달장애, 대표적으로 자폐성장애 환자가 는 것 같다
사실이다. 일반인들의 자폐(자폐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진료 받으러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에, 과학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도 자폐성장애 발병률이 실제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자폐성장애 환자가 2~3배로 많아졌다. 이는 자폐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낮은 국가인 인도 등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자폐 인구가 많아지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하나는 생물학적 변화다. 현 사회는 아이를 출산하는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또, 프탈레이트로 대표되는 환경호르몬에도 많이 노출된다. 이는 태아의 신경 발달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그 다음은 진단 기준의 변화다. 자폐성장애를 걸러내는 진단 기준이 이전보다 정교해져서 고기능 자폐까지 진단 가능해지면서 진단율이 는 것으로 판단된다.
-“때 되면 다 한다”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사이에서 고민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아이의 발달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해주고픈 말은 ‘도’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발달장애아들은 보통 여러 방면에서 문제를 보인다. 언어‘도’ 느리고, 눈 맞춤‘도’ 안 되고, 호명반응‘도’ 안 보이고, 충동 조절‘도’ 안 되는 식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언어‘가’ 안 돼요, 눈 맞춤‘이’ 안 돼요, 호명반응‘을’ 안 해요 라며 병원을 찾는다.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두 가지의 문제만 갖고 있다면 일단 6개월~1년 정도는 지켜봐도 괜찮다. 그 사이에 조금씩 발달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한두 가지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 병원을 찾으라. 반대로, 모든 방면에서 제대로 발달하는 것 같더라도 생후 24~36개월 사이에 되레 퇴행해 또래보다 6개월~1년 늦어진다면 그때도 병원 진료를 받는 게 좋다.
-그 경우 ‘퇴행성 자폐’를 의심할 수 있나
그렇다. 퇴행성 자폐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문제가 된 게 바로 MMR백신이다. “MMR백신 속 수은 보존제가 신경 독성을 일으켜 퇴행을 유발한다”는 말이 많은 부모들 사이에서 오가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너무나 명백하게 증명됐다. MMR백신이 퇴행성 발달 장애를 일으킨 게 아니라, 이 백신을 접종하는 시기에 우연히 퇴행성 변화가 일어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전 세계적으로 200개 정도 연구가 진행돼 백신과 발달장애, 특히 자폐성장애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MMR예방 백신, 안심하고 맞혀도 된다.
-자폐성장애도 완치될까
대부분 병원에서 시행하는 ABA프로그램, ESDM 등 다양한 치료를 통합적으로 시행하는 게 증상 경감과 변화를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완치를 돕지는 못 한다.
최근에는 부모와 함께 하는 치료 프로그램이 중요시되고 있다. 발달장애아들이 아무리 많은 치료를 받는다 해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바로 부모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 하는지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부모 동반 치료가 기존 치료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부모 참여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는 추세다.
의학적인 분야에서는 앞으로의 10년이 기대된다. 2010년 후반기부터 연구가 진행된 치료법들이 있다. 뇌 특정 부위를 활성화하는 신경조절기법을 적용한 치료(신경조절치료)다. 이를 이용해 문제 행동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약물 개발에 대한 관심도 높다. 아직 자폐 같은 발달장애는 병을 유발한다는 특정 물질이 확립돼 있지 않다. 이를 확립하고 나면 약물 개발에 진전을 보일 것이다.
유전 연구, 단백질 연구,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도 활발하다. 병과 관련한 주요 단백질 및 유전자 결함을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교정 치료법이나 약물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 임상 1~2상 단계이긴 하지만 10년 내에는 3상으로 넘어가고, 그러면 근본적인 치료법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세포치료는 동물실험 단계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고는 있지만,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아직은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별 것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치료의 근거가 꾸준하게 쌓이고 있다. 비행기로 따지면 비행기 동체는 이미 만들어졌고, 이제 날개만 만들면 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과거 아무것도 없던 20년 전에 비해 굉장히 많은 걸 알게 됐다. 이제는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단계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근거 없는 치료가 난립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에 대한 희망을 이용해 상업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면 반드시 믿을만한 기관에서 근거가 확립된 치료를 받도록 하라.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는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한다. 아이의 회복과 발전에 대한 기대와 장애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발달장애아의 언어 능력, 인지 기능, 사회성 등이 부족한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를 부정하면 부모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 그렇다고 놓아버리면 안 된다. 아이에게 숨겨져 있는 보석을 놓치지 말라. 아이의 상태를 수용하면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분명 아이가 갖고 있는 보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듯 어느 날은 희망적이었다가 어느 날은 절망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아이의 생활을 돕다 보면 마음의 균형이 잡힐 것이다. 소위 말하는 건강하다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비슷하다. 어떤 아이든 키우다 보면 아이가 내 마음만큼 따라오지 못해 속상할 때가 있고 절망감도 느껴진다. 그러다가 아이가 조금이라도 좋아하거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보다 좋은 순간이 없다. 비록 좌절과 절망의 정도가 소위 건강한 아이를 키울 때 느끼는 것보다 크긴 하겠지만,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외롭다고 느끼지 않길 바란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미국의 경우 처음 자폐성장애를 발견한 게 1949년이다. 치료적 기반이 완성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아직까지도 일부 주(州)에서는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아도 아무런 지원을 못 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4년 발달장애 지원법이 생기면서 치료비나 교육적 지원에 대한 부분이 잘 이뤄지고 있다. 선진국에서 50년간 한 것을 우리는 10년으로 줄일 것이다. 2014년에 발달장애 지원법이 만들어진 건 자폐인사랑협회를 비롯한 장애아를 두고 있는 부모들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기대와 관심을 갖고 발달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면 좋겠다.
정부에서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치료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치료기관을 확대 설립하고, 믿을 수 있는 치료사를 만날 수 있도록 치료사에 대한 퀄리티 컨트롤을 하는 등 개선해야 할 점을 인지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가벼운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려 해도 그들의 행동적 특성 때문에 쉽지 않다. 이들이 진료 공백을 느끼지 않도록 발달장애인 거점병원 제도를 만들었다. 행동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도 받을 수 있다. 현재 전국 8곳 대학병원이 발달장애인 거점병원에 선정돼 있다.
-김 교수님 진료를 받으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하더라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여러 방법을 동원해 봐도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진단 시기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럴 때에는 아까 말했듯 아이의 상황을 조금 지켜보고, 그래도 빨리 진료를 받아야겠다면 발달장애를 전문으로 공부한 의료진이 있는 국공립병원이나 소아정신과의원을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발달 문제가 있어도 특정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 타고난 재능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예상치 못했던 뛰어난 강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발전시키는지가 문제다. 영국처럼 발달장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높은 곳에서는 ‘발달장애를 가졌던 과학자들의 모임’이라는 게 있다. 36~60개월에 자폐성장애 진단 받았던 이들의 모임이다. 성장 과정에서 본인이 갖고 있는 인지적 능력, 창의적 능력, 몰입 능력을 발견하고 키워내 놀라운 과학적 성취를 이뤄냈다. 과학자뿐 아니라 예술가, 문학가, 사회봉사자 등 발달장애인이 이룰 수 있는 건 한정적이지 않다. 모든 발달장애인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부모뿐 아니라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도와야 한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외롭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부모가 고통을 호소하도록 만든 게 누군지 다 같이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김붕년 교수
자폐성장애, 주의력결핍장애(ADHD) 같은 발달장애와 조현병, 품행장애, 틱장애 등을 주로 진료한다. 장애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며, 서울대병원 발달장애인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장 및 중앙지원단장을 맡아 발달장애인 지원 사업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장애인 복지 증진과 가족 관계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그의 명함은 오티스타(자폐인의 재능 재활을 통해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기업) 자폐인 디자이너의 재능으로 제작됐다. 연구실 책장 곳곳에는 자폐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사무용품들이 놓여있다.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hj@chosun.com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1/15/2021011501962.html